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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S/소설

슬러거: 진정한 야구인

by usforall 2024. 7. 22.

 
고요하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분명히 난 진혁이의 공을 보고 세게 휘둘렀는데 어떻게 된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저 멀리서 함성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조금씩 조금씩 소리가 커지면서 내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와아아아~!!"
 
"이타루! 이타루!"
 
사람들이 내 이름을 환호하고 있다. 타석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있는 나에게 우리팀 선수들이 쫓아와 소리친다.
 
"얼른 돌아!"
 
"이타루. 홈런이야! 빨리 베이스 돌고와"
 
맙소사 홈런이라니. 이겼다. 이겨버렸다.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만 베이스를 헛디딜 뻔했다. 1루를 돌고 2루를 돌 때 즈음에 현실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전율이 흐르면서 짜릿했다. 나는 두 손을 높이 들고 함성을 질렀다. 3루를 지나면서 갑자기 진혁이가 떠올랐다.
 
'어쩌지? 내가 홈런이면 진혁이는 패전 투수가 된 건데. 괜찮을까?'
 
진혁이를 돌아봤을 때 마침 진혁이도 나를 보고 있었다. 흐르는 땀에 비에 젖은 듯 했지만 분명히 진혁이는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자그만히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한 홈런입니다. 대한고의 에이스 강진혁 선수도 떠오르는 태양 성삼고 이타루 선수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네 정말 그렇습니다. 이타루 선수가 이번 경기 계속 부진했지만 감독이 교체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네요. 한 방이 있는 선수니까요."
 
"이타루 선수! 미래의 국가대표 슬러거를 지금 눈앞에서 보고 계십니다."
 
중계진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끝내기 홈런에 대해서, 이타루의 타격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하지만 그런 칭찬도 경기장의 환호성 소리보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함성 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에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최우수선수상을 받게 된 나와 우수투수상을 받는 진혁이가 나란히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름 모를 파란 눈의 스카우터들은 역시 진혁이 쪽으로만 관심을 두었지만 그런 일 따위는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축하한다. 타루야.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는데. 졌다. 졌어."

 

진혁이가 나에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항상 멀리서만 봤던 진혁이와 함께 야구를 하다니. 그동안의 노력을 모두 보상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웃으면서 진혁이를 향해 스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시 한 번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듯이•••.


 
깜빡깜빡
 
전광판에 나타난 큰 시계가 일 초에 한 번 씩 깜빡 거린다. 어느덧 출국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스포츠 취재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진혁이를 보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이상해진다. 부러움이나 질투 같지는 않고, 서운함이라고 표현 하기에는 좀 밍숭맹숭한 느낌이다. 기자들이 돌아가자 진혁이가 나에게 웃으며 다가온다.
 
"타루야. 많이 기다렸지? 할 말도 없는데 계속 기자들이 질문을 해서 말이야. 미안해."
 
"뭐 그런걸 가지고. 넌 이제 곧 메이저리거가 될 거 아냐? 기자들이 미리 얼굴을 익혀놓으려고 그런거겠지. 다 이해해."
 
"메이저는 무슨. 아직 멀었어. 그나저나 좀 서운하지 않아? 같이 야구를 할 수 없다는거 말이야."
 
진혁이의 말을 들은 나는 표정을 숨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다. 중학교 때처럼 다시 한 번 야구를 같이 즐기고 싶었다. 나는 힘들게 말을 건냈다.
 
"내가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너와 함께 같은 팀으로 뛰고 싶었어. 이제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니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뜻 모를 이야기를 한 진혁이가 그 때 그 웃음을 다시 짓는다. 나의 물음에 웃음으로 답한 진혁이가 시계를 보더니 게이트 쪽으로 걸어간다.
 
"또 보자. 이타루."
 
"진혁아 우리 언제 같은 팀으로 뛸 수 있을까?"
 
대답을 하지 않고 진혁이는 당당한 걸음으로 길을 떠난다.
 
"야! 강진혁! 말을 하다가 가는게 어딨어?"
 
진혁이는 공항의 큰 창 밖으로 보이는 어딘가로 손가락을 가리킨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저 녀석은...'
 
진혁이가 가리킨 곳에는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우리가 함께 뛰었던 운동장에 걸려있던 태극기도 지금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국가대표라니 무슨 말을 하는거야. 설마 내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진혁이는 이미 게이트로 들어가고 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진혁이가 간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혁이는 분명히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까? 문득 진혁이와 내가 나누었던 결승전의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는 똑같은 미소가 퍼졌다.
 
"할 수 있어! 난 슬러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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