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말이다. 여전히 나는 안타가 없었지만 방금 전 타석에서는 겨우 4구로 출루할 수 있었다. 상대 중간 계투도 나만큼 긴장을 했던 것인지 계속 볼이 들어왔다. 비록 내가 출루하긴 했으나 스코어는 1점차 뒤진 4:3이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둘. 이번만 잘 넘기면 역전도 가능하다. 진혁이만 나오지 않는다면.
“드디어 대한고 감독이 올라옵니다. ‘강진혁’ 투수로 교체할 것 같은데요. 조금 이르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캐스터가 말을 하자 흥분한 해설가가 뒤이어 말했다.
“아니죠. 지금 교체 타이밍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진혁 선수라면 충분히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죠. 에이스가 지금 해줘야 합니다.“
결국 진혁이가 나왔다.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나온다고하니 긴장이 된다. 매번 친한 친구로서, 같은 편으로만 대했던 녀석인데 이렇게 적으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보니 마치 처음보는 사람과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강진혁 선수 연습 피칭을 하고 있는데요. 대단합니다. 속도계에 151km가 찍힙니다."
"확실히 집중을 하고 온 힘을 쏟아 붓는 것 같습니다. 성삼고 타자들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팀 덕아웃을 흘깃 쳐다본다. 감독님께서는 그저 팔짱을 끼고 있고, 아무런 사인이 나오지 않는다. 감독님은 아직도 나를 믿고 계신다. 우리팀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가고 있다. 진혁이의 표정을 살펴본다. 표정이 약간 굳은 것 같은데 긴장을 하고 있나? 아무리 진혁이라도 긴장을 안하지 않을 것이다. 진혁이의 투구 모션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만약 내가 2루로 간다면 우리가 충분히 동점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뛸까? 분명 진혁이는 다리를 든 후에 발끝을 한 번 흔들고 던진다. 그 때 타이밍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해.'
진혁이가 1루 쪽을 쳐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몸이 얼어버린 듯 움찔하며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퍽.
"스트라이크"
심판이 큰 동작으로 스트라이크 콜을 한다. 비록 뛰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변화구였다. 내가 몸이 굳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뛸 수 있었다.
진혁이도 긴장을 했는지 숨을 크게 쉰다. 분명히 나만 떨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 번 진혁이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이번엔 뛴다. 자세를 잡고, 와인드업, 다리를 흔들.. 이때다!'
"주자는 뛰었고, 공은.."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캐스터가 소리쳤다.
"공은 2루수 앞 땅볼. 4-6-3 병살타가 나오네요. 성삼고 입장에서는 정말 아깝습니다."
"대한고의 강진혁 선수는 정말 잘하네요. 성삼고는 기세가 크게 꺾일 것 같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마치 우리가 졌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병살이라니 최고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벌써 9회 말이 되었다. 진혁이는 여전히 마운드에 서있다. 8회를 완벽하게 막아낸 진혁이도 9회에는 흔들리고 있었다. 3이닝이나 던지는 것은 무리였는지 1, 2루에 주자를 내보냈다. 한숨을 내쉬는 진혁이를 향해서 대한고 감독님이 마운드로 다가온다.
"마! 강진혀기. 와이래 힘이 드갔어? 이제 지칬나?"
"아닙니다."
"니 뒤에 없데이. 잘 알제?"
"네. 알고 있습니다."
대한고 감독님은 무슨 말을 하는지 웃으면서 내려간다. 이 상황에 웃을 수 있는 감독이라고? 십 수 년 만의 우승에도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다. 그건 그렇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한 후 진혁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갑자기 변했을까?
깡.
"내야에 높게 뜹니다. 인필드 플라이가 선언되네요. 2아웃입니다."
"성삼고는 정말 아쉽습니다. 어떻게 하든 진루타를 쳐줬어야 하는데요. 강진혁 선수가 평정심을 찾고 다시 제구가 좋아졌어요."
대기 타석에서 보는 진혁이의 공은 확실히 다르다. 여전히 빠르고 날카롭다. 이제 내 차례가 다가왔다. 진혁이와 눈이 마주친다.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타석에 들어선 후 애써 미소를 지어본다. 하지만 심장은 더 빠르게 뛰고 있고, 진혁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본다.
'오늘은 투심 보다 슬라이더로 승부를 했었지. 둘 다 노려서는 승산이 없어.'
퍽.
"스트라이크"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사이렌 처럼 긴박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들은 심장은 더 크게 뛰기 시작한다.
'이제 두 개 남았다. 방금은 바깥쪽 빠른 공이었어.'
진혁이는 이제 주자를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딱히 견제를 할 것 같지도 않고 오직 나와의 승부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나는 진혁이의 습관을 알고 있다. 슬라이더를 던질 때 팔꿈치가 몸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진다. 바로 그 때를 노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퍽.
조용하다. 미트에 공이 꽂히는 소리만 들린다. 심판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있고 진혁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역시, 아직 습관이 남아있었어. 슬라이더는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
포수와 투수가 사인을 주고 받는다.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듯 몇 번의 끄덕임이 오간다. 진혁이는 의미 없는 1루 쪽으로 견제를 하나 던지고는 큰 숨을 내쉰다.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씨익 웃는 진혁.
'뭐야 녀석 갑자기 왜 웃는 거지?'
흔들. 팔꿈치를 안쪽으로 살짝 들어간 것을 보면 분명히 슬라이더였다.
'왔다!'
마음 속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있는 힘껏 방망이를 돌렸다.
퍽.
"스트라이크!!"
심판은 마치 마지막 콜을 하듯이 두번째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나는 분명히 진혁이의 습관을 알고 있는데 다른 공이 나왔다. 순간 생경함이 느껴져서 소름이 돋았다. 진혁이가 공을 던지기 전에 보여줬던 미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순간 겁이 났다. 진혁이도 나의 습관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믿을 곳은 감독님 밖에 없었지만 감독님은 그저 온화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타루. 너 자신을 믿어라.'
마치 감독님의 말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1볼 2스트라이크에서는 타자가 불리하다. 거기다가 마운드에는 에이스 진혁이가 서있다. 나는 진혁이를 쳐다 보았다. 눈을 마주쳤을 때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는 그만 씨익 웃고 말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는 언젠가부터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진혁이도 나를 보면서 똑같이 웃는다. 그러면서 입으로 무엇인가 말을 한다.
'이타루. 쳐봐.'
"9회말 2사. 대한고가 4:3으로 한 점 앞서고 있습니다. 볼 카운트는 원 앤 투. 타석에는 3타수 무안타의 이타루 선수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공이 될 수도 있는 순간입니다. 투수 강진혁 와인드업. 던졌습니다!"
진혁이가 있는 힘껏 던졌다. 두 손을 꽉 쥐고 나도 힘껏 휘둘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와아아아~!!!"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온 경기장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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